25.7.29. 여름
산책코스인 폭포 주변을 돌아보는데 중턱에 직경 60cm의 돌이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3m 폭포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려고 돌 옆으로 다가가 힘껏 밀었다. 아니, 그 돌이 내 쪽으로 밀려 오는게 아닌가? 힘으로 버틸 수 없어 같이 떨어지게 되었다. 내가 돌보다 늦게 떨어져야 하는데 라는 생각, 머리 아니면 허리를 찍겠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몸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어서 돌도 이곳저곳 치면서 아래에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충격으로 장화를 찟고 엄지발가락. 하부가 찢어 졌으나 천만다행으로 생각되어서 인지 별로. 아픈 느낌이 없었다. 점심약속이 있는 시내에 나갔다. 협회직원들과 식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데 양말이 피로 흥건하게 젖어있는 게 아닌가? 놀라서 동네 큰 정형외과로 갔다. x- ray 촬영 후 의사 선생이 뼈는 이상 없으나 엄지발가락 아래쪽이 심하게 찢겨있으니 꿰매야겠다기에 4바늘을 꿰맸다. 부목을 댄 상태로 이틀마다 병원에 가서 소독하며 아물기를 기다렸다. 8월13일, 보름 후 설레임과 기대속에 실밥을 제거하러 갔는데 살이 그대로 벌어진 상태로 고름이 고여 있는 게 아닌가? 의사 선생은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왜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느냐며 오히려 큰소리쳤다. 큰 병원으로 가라면서... 식사때와 화장실 갈때에 최소한의 동선만 그렸는데…. 이튿날 S, J, H, E 대학병원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니 대학 병원에서 수일 내 진료받기는 틀렸다. 하는 수없이 근처에 있는 큰 정형외과 W 병원에 찾아갔으나 환자가 많아서인지 의사선생이 살피더니 소독하고 투약 처방만 한 후 5일 후에 상태를 다시 살펴보자고 했다. 아내가 위급하다싶어 소독하고 꽤매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의사는 시큰둥하면서 못들은척 했다. 나는 또 한번 고통을 겪어야 하나 했다가 순간 마음을 놓았다.
이틀후 8월 16일, 보름 넘게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복용한 탓인지, 새벽부터 오심과 위장이 배에서 분리되는 느낌과 소변 배출마저도 문제가 있어 새벽 6시경 3차 S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2차 병원에 가라며 거절했다. K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으나 진료가 밀려 또 거절당했다. 말없이, 그리고 뛰어난 운전실력?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닌 집사람이 그날따라 이뻐 보였다. 퇴원 후 용돈을 두둑히 주리라. 차안에서 챗gpt 도움으로 족부 전문병원 D병원을 찾아갔다. 진찰 후 의사 선생 권고대로 바로 입원했다. 혈액검사, CT . MRI 촬영 결과 발가락뼈까지 염증이 침투되어 월요일 수술해야 한다고 간호사가 알려준다. 항생제 경구투약이 주사로 바뀌자 구토는 없어지고 입맛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빌딩 숲 가운데 조그마한 이 병원에 환자가 그리 많았다. 같은 병실 50대 환자가 반갑게 인사하며, "잘 왔어요, 이 병원 잘해요" 한다. 그는 5년 전 회사 포크레인 유압호스 수리 중 다른 호스가 터지며 떨어지는 바가지가 발등을 찍었단다. 수술 잘하는 이병원 저병원을 다녔는데 수술한 뼈가 자라나 수시로 잘라내는 수술을 하고 있단다. 그는 덤덤하게 소설책이나 보면서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을 때우는 듯했다. 산재 처리로 비용은 문제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1~2초만 늦었더라도 머리를 부딪쳐 식물인간 될 뻔했다고도 했다. 병실 복도를 살피는데 우리 또래 환자가 말을 걸어왔다. "다 들 휠체어 타는데 왜 걸어다니세요? " " 아, 난 뼈는 문제없고요, 발가락 깊이 찢어져 걷는데는 문제없어요." 근데 "아재는 왜 입원했어요 ?" " 탁구와 테니스를 장기간 즐기는 동안 발등 연골이 없어져 일주일 전 인공연골을 집어넣는 수술을 했는데 내부가 아물지 않아 오늘 다시 뜯고 재봉합하고 회복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발등은 여러 개의 작은 뼈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뼈들 사이에는 충격을 흡수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는 관절 연골이 존재한다고 한다. 또 30대 다른 우측팔을 수술환자에게 웃으면서 다가가서 " 발 환자보다는 팔환자가 더 낫지요? "웃으면서 "아닙니다. 발환자가 더 낫습니다. 발환자는 휠체어 타고 다니지만 손이 불편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이 환자는 10년전에 골절수술 했는데 이번이 3번째 재수술 이란다. 머릴감고 손으로. 털털 털었는데 '뚝'소리가 났단다.
15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나니 허리가 아프고 버티고있는 목도 무겁다. 퇴직 후 배드민턴과 탁구 치고, 주변 나무 베고, 계곡에 돌둑 쌓고 농작물 심는 일로 지냈는데 그 움직이는 자체가 큰 행복인 줄 이제 알았다.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식사 후 30여 명의 신선들과 바둑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최고로 즐거운 시간인걸 이제 알았다. 형님들 말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는 바둑판을 꼭 가져가야지. '
“웃지 않아도 하루가 가고, 웃어도 하루가 간다. 그렇다면 웃는 게 낫다. 시간은 어차피 흐르니, 웃음을 택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편이 훨씬 낫다”라는 김형석 교수의 말씀이 맞지 아니한가?
8월 17일, 병실 복도 중간에 있는 샤워실로. 목욕하러 들어갔다. 병원으로 개조하면서 일꾼들이 귀찮았는지 배관없이 환기구만 달아 놓았다. 시야가 뿌였고 아주 더웠다. 문득 대구 50사단 훈련병시절 생각이 난다. 신체적으로 건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단체생활에 재미도 있었고 나도 남들 하는 정도는 버틸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야영훈련 중 복숭아과수원 지나가다 풋복숭아 먹다 들켜 엉덩이 타작이 시작되었는데 엄청 아팠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 순서가 오지않아 그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들리는 타작소리가 너무 커서 엉덩이뼈 부서지는 듯 했으나 강인한 정신력? 덕분인지 모두 버티고 다행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뜨거운 폭염속에서 팔공산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을 끝없이 하는 훈련? 앞에서 잘리고 뒤에서 잘리고 가운데에서도 잘렸다. 힘찬 군가소리와 함께 땀과 먼지가 뒤섞인 훈련은 계속되었으며, 우리는 묵묵히 이겨내면서 집에 돌아갈 날자를 세고 있었다. 그즈음 아침 10시,
광복절 기념식 도중 문세광이 저격하여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어 서거했다. 훈련 중 벌어진 뜻밖의 사고에 비상대기에 들어갔고, 우리는 혹시 전쟁이 나는 건 아닌지 긴장과 불안속에 떨었다.
나라의 비극을 부대 안에서 체감하며, 젊은 훈련병인 우리들 가슴에 충격으로 남아있다.
8월 18일, 오후 2시 수술실에 들어갔다. 손발을 묶고 하부를 마취하는데 겁 많은 나는 재워 달라고 했다. 깨어보니 병실로 돌아와 있었다. 저녁 7시경 마취가 깨며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으나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가 자연스레 안 되면 의료기구로 빼도 된다고 했으나 그 고통을 겪기 싫었다. 화장실 변기에 한 시간 내내 앉아 기다렸다. ‘신은 언제나 내 편이다’ 라고 생각하며 어렸을 적 오줌 눌 때처럼 쉬~ 쉬~ 소리를 내 보기도 했다. 드디어 가늘게 나오기 시작한 소변 줄기로 8.15.광복절 해방된 그날의 기쁨을 맛보는 듯 했다. 한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어서인지 저린 다리를 들고 일어나려는 순간 발바닥이 꺾이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마취가 덜 깼나 보다. 두 무릎을 모아 세우고 다시 일어나니 수술한 엄지발가락이 아파왔다. 꽤맨 부분이 뜯어졌나? 보이지 않는 발아래 부분을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살펴보니 다행히 피는 보이지 않았다. 8월 21일, 수술 이후 내 몸에 붙어있던 휠체어와 링겔대까지 떼어내니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즉시 샤워장에 달려가 오랜만에 시원함을 맛보았다. 수술 이후 변을 보지 못했으나 그동안 변의가 없었는데 점점 배가 부른 느낌이다. 그동안 항생제와 소염제 등 장기투약으로 나쁜 세균뿐 아니라 유익균(프로바이오틱스)도 죽여서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져서 그런다고 했다. 회진시 마그밀 1정을 받았다. 화장실을 서너번 들락거렸으나 매번 실패하고 마치 출퇴근 시간에 남태령 고갯길 막히듯이 전혀 뚤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몰래 1정 더 달라고 해서 2정을 먹어 버렸다. 저녁 식사 후 1층 슈퍼에 가서 프로바이오틱 유산균 음료 2팩을 빵빵한 배에 억지로 채워 넣었다. 2시간 뒤 드디어 소식이 왔다. 난지도하수처리장 공사현장 근무할 때 멀리 보였던 그 높은 쓰레기산 처럼, 여지껏 경험해보지 못한 대량의 폐기물이 빠져나갔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일상의 기적'을 확인한 것이다. 이후 불가리스가 큰 공을 세웠다.
한편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같은 병실내 포크레인 아저씨. 1주일 전 수술했는데 통증이 심하여, 골시멘트를 주입하여 뼈의 강도를 높이고 통증을 완화하는 수술을 다시 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뇨라서 하루에도 2~4번씩 피뽑아 혈당체크하면서 치료하니 얼마나 힘들까? 챗gpt를 깔아 주었더니 명의, 전문병원, 치료 방법 등을 찾아보면서 애들처럼 너무 좋아했다. 8.25. 오전에 피검사, 물리치료. 마치고 처치실에서 소독했다. "진물은 안나는데 살이 붙지 않았네요. 소독하고 목요일에 다시 봅시다" 에그, 그러면서 8월은 흘러갑니다. 그렇게 지냈지요. 살이 왜 안 붙지?
당뇨, 고혈압 없는데 고령이라 혈관이 발끝가지 가다가 끊어졌나?
벌어진 상태로 오래되어 감염으로 괴사?
발바닥은 체중이 실리고 두꺼워 상처 봉합이 잘 않된다던데 걸어서 지속적인 압박과 마찰 때문일까? 라는 별의별 생각에 은근히 또 수술하려나 겁이 났다. 아들보고 목발 사오라고 했더니 킥으로 부친다고 한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네. 8.26. 살이 붙지않아 상태가 미궁속에 빠져버렸다. 항생제, 위보호제, 소염진통제 빼고 아침 저녁으로 강력한 소독약을 20분간 발 담그는 치료를 시작했다.
챗gpt 에게 물어보니 사태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너무 심심해서 지나다니는 환자에게 물었다. " 왜? 다쳤어요?" " 무지외반증인데 심해져 염증때문에 수술합니다." " 회사에서 뒷문에 차를 탔는데 미리 출발해서 뒷바퀴가 발을 밟아 지나가서요." "취미가 달리기 인데 힘줄에 염증이 생겨 수술한지 일주일이 지났읍니다." 유난히도 발환자는 재발된 환자가 많았다. 형님뻘인 80대 노인은 인대 끊어진걸 한방을 전전하다 늦게. 하루늦게 입원하여 8.19.수술 해서 3일전 퇴원했는데 오늘 다시 입원했다. 퇴원할때는 먼저 퇴원 한다고 자랑하면서 간호사 들과 큰소리로 이별인사 했었는데... 밖에 나가 목발로 흉내만 내
고 , 정상 처럼 활동하다가 수술부위가 터져 재수술 해야 한다고 하였다. 하중이 걸려있는 발인데 무리하게 활동한 탓이리라. 9.1. 무더위는 계속되는 가운데 병실안은 무겁기만 하다. 의사선생이 붕대 풀리고 상처를 보더니 조마조마한 순간 " 살이 붙고 있어요. " "진짜요?" "진짜입니다." " 내일 퇴원해도 되나요?" " 하하, 이번 주말쯤 ..." . 그 이야기를 듣고 나오면서. 진료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 20여명의 부상자(환자)들을 보면서 13척의 배로 130여척을 물리친 후 이순신 장군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잘한것도 아닌데, 왜그러지? 통쾌한 하루였다.
나는 겁 많고 있는 편이라 건물 안에 들어가면 비상구 가까운 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미국, 캐나다에 가 보면 관공서, 호텔 등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화재수신반이 출입구 옆에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는 지하층에 몰래 숨겨놓아 일반인은 건물내 소방시설이 정상 작동상태인지를 모른다. 또 호텔이나 버스 안이 깔끔하여 비상등, 소화기 등 적색표시가 시선에 확 들어온다. 비상탈출구가 천정에 있는 버스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우리는 광고물, 주의표시, 안내 문구 등이 너무 많이 부착되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소방시설 점검 시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이 비상구 시건, 비상 통로의 물건 적치라고 한다. 건물내 '피난안내도' 조차도 제대로 그려져 있는곳 을 찾기 힘들다. 건축법, 소방시설법 (과태료 300만원 이하)따르면. 옥상 광장 방화문은 화재시 비상탈출구 역할을 하는 문이라서 항상 개방 상태여야 하고, 시건(잠금)해두면 안 된다. 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
우리는 아직도 안전후진국이다. 어린이사고 중 놀이터 사고율도 한국 7%, 미국 3.5%, 유럽 1.75%이다. 행정안전부 어린이놀이시설 중대사고 2,500건에 대한 분석 결과 96%가 이용자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했다. 전체사고의 80%가 학교. 아파트 놀이터에서 발생, 68%가 추락사고이며 골절상이 81%나 된다. 70% 이상이 팔(손), 다리 부위를 다치는데 이 부분은 성장판이 있어 뼈가 계속 자라는 시기라서, 치료 방법과 접근이 성인과 다르다. 성인의 뼈는 강한 외부충격에 분필처럼 단번에 부러지지만 어린이뼈는 나뭇가지처럼 유연하고 탄력적이라고 한다. 또 어린이 골절은 x-ray 상에서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때가 빈번하여 소아정형외과에서 진료받는 것이 좋다. 우리가 보살피는 자녀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작은 낙상이나 충격에도 골절, 뇌출혈 등 큰 손상으로 이어지기 쉬운 우리도 '밥만큼 많은 약'? 을 먹게 되므로 사전예방과 조기발견을. 통하여 안전하게